[서평] 부모의 자격과 데미안의 알 - 『배움의 발견』


세상과 등지며 산속에서 살아가며, 정부를 적대시하고 특히 학교와 병원을 가족 모두의 삶에서 없애버린 아버지.

그의 엄한 지도 아래에서 자녀들은 폐철 처리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그의 종교적 망상 속 종말의 날을 대비하기 위해 음식을 진공 포장해 차곡차곡 쌓는다.


책 정보 링크

배움의 발견(Educated)은 2020년 1월에 한국에 출간된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의 실제 회고록이다.

모르몬교 근본주의자 아버지 밑에서 16년간 자라던 소녀가, 17세에 기적처럼 대학에 합격해 집을 떠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되는 여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부모'라는 위치에 주어지는 권한과 자격을 다시 생각해보고, 타라가 아버지의 세계라는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것의 의미를 짚어본다.


타라의 아버지가 가족으로부터 빼앗은 것은 '문명'이라고 함축할 수 있다.

첫째로, 안전을 대표하는 병원을 배척해, 아들이 지게차 팔레트에서 떨어져 머리가 다치거나, 온몸에 화상을 입더라도 그는 아내에게 약초 치료를 맡겼다

둘째로, 교육을 대표하는 학교를 배척해,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집을 떠난 이들을 제외하면 그의 자녀들은 말로만 홈스쿨링이지 전혀 교육을 받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문명에서 거리가 먼 위생 관념, 그리고 인종이나 여성 등 사회에 대한 수많은 잘못된 고정관념이 있다. 문명에 대해서 다양한 정의가 있을 수 있지만, 그가 안전, 교육, 위생, 세계관을 거부함으로써 충분히 그의 자녀들은 문명 이전의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문명을 앗아간 그에게는 그러한 권한이 있을까? 그는 단지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자녀들을 사유물처럼 부리며 본인의 세계관을 복사·확장하는데 이용했다. 우리는 '부모 자격시험'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세상을 그려볼 수 있다.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설국열차>에서, 3등석 사람들에게는 출산의 자유가 없고 한정 수량의 티켓을 가져야 부모가 될 권한이 생기는 것처럼, 일종의 '자격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에 한해서 출산이 허용되는 그런 세상 말이다첫째로는 자녀의 교육과 안전에 대한 입장이 정상적인지 파악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정서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는지, 타라의 아버지처럼 조울증을 겪으며 피해망상을 종교적으로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실 극소수일 것이며, 이는 출산율 문제를 악화시킬 만한 영향력을 발휘하진 않을 것이다. 운전면허증처럼 무자격자를 색출하기 위한 시험인 것이다.

드라마 설국열차


그런 가정에서 자랐지만, 일곱 자녀 중 셋은 부단히 저항하며 노력한 결과 집을 나가 대학에 입학하고 박사 학위까지 따게 된다. 특히 타라는 최우수 학부생상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고 2019년에는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꼽히기에 이른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그녀가 성장하며 대학에 가기를 결심하기까지, 수많은 사건이 있었고 그것들이 그녀의 사고방식에 변화를 주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지만, 사실 결국 아버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녀가 대학에 입학하고 새로운 세상을 마주치며 나아갈 때,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의 세계라는 알에 갇혀 있던 소녀가, 그 알을 파괴하며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는 과정은 가슴 뭉클한 것이었다. 결국 '변화'란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며, 현재의 세계를 이전의 세계로 넘겨주는 과정인 것이다. 여태까지 믿었던 세계 이외의 세계도 존재하며 그것이 더 완전한 세계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누군가에겐 불경스러운 소리이며 다른 누군가에겐 도전과 발전을 의미한다. 그것이 피해망상 아버지가 군림하는 가정에 남은 넷과, 집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고 헤쳐나간 셋을 구분하는 차이일 것이다.

가족들로부터 문명을 앗아간 타라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부모'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자격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를 반면교사로 삼아 부모의 자격을 평가하는 시험을 구상해본다면, 자녀의 교육과 안전에 대한 입장과 함께 본인의 정서적 안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외딴 독재 집단에서 자란 타라에게 있어, 가정을 떠나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은 기존의 세계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창조이자 파괴인 행위를 시도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새로운 경험과 발전된 스스로를 얻게 된다는 메시지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도전과 발전에 대한 따뜻한 응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댓글 쓰기

6 댓글

  1. 미국의 경우 잘못된 믿음으로 예방주사를 거부하는 부모를 둔 자녀들이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데 Philgineer 님의 '행복의 발견' 서평을 읽어보니 사실인 것 같네요.이 책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회고록이라고 하니 꼭 읽어보고 싶네요

    답글삭제
    답글
    1. 맞습니다 안타까운 일들이 많습니다

      삭제
  2. 실화라고 해서 처음에 조금 놀랐다가, 최근까지도 뉴스에서 꾸준히 보이는 아동 학대 사건들이 떠올라서 씁쓸했네요.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또다른 한 사람으로 존중할 수 있는 부모가, 그리고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답글삭제
    답글
    1. 흡입력 있는 매력적인 소설처럼 읽다가도, 말씀하신 것처럼 문득 이게 모두 실화라는 걸 상기할 때마다 정말 충격적입니다. 공감합니다.

      삭제
  3. 교육은 반면교사도 있으니 참조하면 될것 같습니다~~~~~~

    답글삭제
    답글
    1. 그렇죠 이로부터 분명히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메세지도 있을 것입니다.

      삭제